달나라
어릴 적 성남의 작은 마을에 산 적이 있다. 마을 이름이 특이하게도 달나라였다. “달나라” 예쁜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름의 어감과는 다르게 달나라는 시청, 구청 등 어디든 찾아가 주민들이 이것 저것 달라고 조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나라에는 텔레비젼이 두 대 있었다. 하나는 마을의 유일한 문화공간인 만화방에, 또 하나는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이장 집 이었다.
어린 나이에 만화방을 다니기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만화방은 오후 6시경 일정의 금액을 받고,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흑백 텔레비젼의 맛을 보여주었다. 그 맛이 하도 오묘해서 아이들은 넋을 잃고 텔레비젼을 쳐다보는 것은 기본이고, 부모를 졸라 만화방에 얼마의 경제적 가치를 헌납하는가 하면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돈을 사용하다 부모에게 발각되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장 집에는 또래의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장 집은 다음 대선(?)을 위해 인심을 많이 베푸는 경우였다. 그러나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의 민심을 잡기 위한 도구다 보니 방영되는 드라마에 아이들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돈이 없던 아이들은 그 재미없는 드라마라도 보고자 날이 어슴푸레지면 이장 집으로 하나 둘 발길을 재촉했다.
나는 이장 집에서 매일 행해지는 연회에 간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간 게 맞다. 새로 이사온 아이라는 치명적 핸디캡과 성격적 결함이 있던 나는 동내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고, 이장 집 출입은 극히 재한 되어 있었다. 이장 집 출입이 자유로운 아이들은 이장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맛있는 걸 나눠 먹을 줄 알아야 했다. 또한 어린 나이에 아부라는 처세술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집안의 경제력이 나눠먹을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격적 결함으로 누군가에게 굽신 거릴 줄 몰랐고 또 하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네 아버지가 이장이지 네가 이장이야, 어린 녀석이 왜 그 모양이야”라고 대범하게 말할 줄도 몰랐다. 이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우리 집에 들어오지마”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쳤다. 아이들 모두가 메뚜기 잡으러 산으로 들로 동내를 순찰하던 중 그 작은 산골마을에 사냥꾼이 나타났다. 아주 무시무시한 참새 사냥꾼이었다. 탕, 탕, 총소리는 천둥소리보다 더 무섭게 들려왔다. 어느 농가 논 저편 밤나무 사이로 참새가 힘없이 떨어졌다. 이장 집 아들은 아이들에게 참새를 찾아 사냥꾼에게 갖다 주자고 명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오늘까지도 한 적이 없는 항명을 했다. 이장 아들의 명령을 듣기 싫었던게 아니라 힘없는 참새를 죽이는 사냥꾼의 개가 되는게 싫었다. 이장 아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겼다. 참새가 농부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데, 그런 참새들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인간의 악랄함을 토로했다.
순간 분위기는 매우 싸 해졌다. 자존심을 구긴 이장 아들은 결투를 신청해왔다. 나는 주먹은 약해도 순발력은 좋았다. 그 녀석의 코는 빨간 피로 물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선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얘들 싸움이 어른싸움 된다고 했던가, 참 이장이라는 완장은 역시 무서운 것이다. 갑자기 조형기 주연의 “완장”이라는 단막극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여하튼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이장집 텔레비젼은 꿈에서 조차 볼 수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나아질게 없던 우리 집은 만화방에서 상영되는 재미있는 어린이 만화를 보여줄 능력이 되지 않았다. 차츰 텔레비젼의 마력에 빠져들던 아이들과 이야기가 통할리 만무했고, 관심사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던 나는 점점 짜증을 잘 부리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우리 가족은 달나라를 빠져 나왔다. 성남에서도 조금 발전된 곳으로 나온 나는 더 많은 텔레비젼을 보고 세상에 텔레비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사온 곳에서도 달나라는 매우 유명한 마을이었다. 아직도 달나라는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달라는 것이 많았다. 오죽하면 시청 직원들이 도망 다닌다는 말이 나돌까…
나이 들어 알게 되었지만 성남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서울의 철거민들을 몽둥이질로 쫓아낸 곳이 성남이었다. 그 철거민들 가운데는 가난해서 철거당한 사람들도 있지만 죄가 있어 숨어살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달나라는 유달리 무엇을 달라고 조르는데 있어서도 과격함을 나타냈다. 과격함 뿐만 아니라 거의 아이들 땡깡 수준이었다. 그 땡깡의 선두 주자들은 다름아닌 아줌마 부대였다. 그런데 일반 아줌마들의 땡깡과는 질적으로 틀렸다. 시청 혹은 구청 직원들이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인분을 퍼다가 그 직원에게 붓기도 했고, 청사 앞에 드러눕고 죽여라 살려라는 기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멱살잡이를 당하던 시청 직원이 참다못해 아줌마 한 명을 가격하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시장이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지만 때는 이때였다. 온갖 감당하기 힘든 요구들이 밀려왔다. 시청에서는 처리할 수 없는 요구에 서울에서 감사반이 떳다. 감사반은 달나라의 명성을 조금은 알고 있는 듯 했다.
문제가 커질 것을 염려한 감사반은 달나라 마을의 요구들을 대충 들어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러나 달나라 마을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마을 어귀까지 도로를 내 달라, 전신주를 새로 교체해 달라, 심지어 마을 이장의 부서진 물받이까지도 고쳐달라는 등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요구에 감사반은 차츰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 한 직원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던졌다.
“다음주면 정월 대보름입니다” “그게 지금 이 상황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정월 대보름에는 동네 아이들이 쥐불놀이 하고 놉니다” “그런데” “제가 살던 시골에서는 쥐불놀이를 하다 논, 밭을 태우고 바람이 심한 날에는 마을이 불바다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 순간 침묵이 흘렀다.
정월 대보름이 지난 토요일 동네 아이들이 웅성 웅성 너 댓씩 모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야”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물어보았다. “참, 너 달나라에서 살았었다며, 창식이 아냐” “창식이… 아, 이장 아들. 근대 창식이가 왜” “창식이가 달나라 갔대” “원래 창식이는 달나라 살아” “아니 그 달나라 말고 토끼가 사는 저 달나라” 순간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보름날 아이들이 쥐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불길이 번졌고 바람이 심해서 마을 사람들이 불길을 잡지 못해 동네 대부분이 불타버렸는데, 하필이면 그 불이 이장 집까지 집어삼켜 텔레비젼을 보던 창식이랑 아이들 몇 이 죽었대”
그 뒤로 달나라는 성남에서 사라진 동네가 되어 버렸다.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된 감사반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서울로 돌아가 버렸다. 시장 또한 달나라 주민들의 슬픔에 애도를 표시하며 다시는 달나라와 같은 불행한 마을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서둘러 달나라 마을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 시켰으며 달나라는 공동 묘지로 만들어 버렸다.
가끔 텔레비젼을 보다 자기집 텔레비젼을 보여주지 않고 으시대던 창식이가 생각난다. 이젠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도 텔레비젼을 보고 싶어 창식이에게 필요이상으로 친절 하려고 했던 나 자신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도 창식이는 달나라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으시대며 자기집 텔레비젼을 보여주고 있겠지…
3학년 7반
3번째 맞이하는 교생선생님이시다. 아니, 우리는 그냥 교생이라고 부른다.
어찌 되었던 처음 맞이한 교생은 인간도 아니었다. 그 놈은 선생이 될 자격도 없는 놈이다. 그렇게 무자비하고 무식한 놈이 어떻게 선생을 하겠다고 교대를 나왔는지, 결국 학부모들의 원성으로 교사 노릇을 못하게 하겠다는 학교의 입장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 뒤로 교생이라면 치를 떠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3번째 맞는 교생은 어여쁜 여선생이었다. 대학교 4학년 푸릇푸릇한 여선생에 아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수업시간에 손거울을 치마 밑으로 살짝 들이미는 녀석부터, 뻔한 대답을 가지고 모르겠다고 갸우뚱 거리며 선생의 쟈스민 향 냄새를 맞는 녀석, 선생이 복도를 저만치 가고 있을 때 무작정 뛰어 슬라이딩 하다 선생 치마 밑으로 들어간 녀석까지 갖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학교에 오는 것 같다. 영문과 출신인 선생은 체육을 무지 잘 했다. 복도에서 슬라이딩 후 도망치던 녀석은 끝내 뜀박질에서 잡히고 말았다. 무슨 선생이 그리 끈질긴지 학교 정문까지 도망치던 녀석은 학교 탈출에 실패한 패잔병이 되어 교무실로 직행 교생에게 잘 보이려던 무시무시한 체육선생에게 최고의 먹이 감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의 영어 성적을 꽤 좋아졌다. 영어 선생인 담임은 크게 분노했다. 교생이 오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내노라 하는 미모로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자신이 애띤 교생에게 자존심에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그 날부터 담임이 가르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시험을 그르친 녀석들에게는 매 타작이 시작되었다.
여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들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담임에게 적발되곤 했다. 담임은 벼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게 지나간 한 달 후 교생의 마지막 인사가 있던 날, 아이들은 슬픈 눈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미련의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교생들 대부분이 떠나면서 하는 말이 다 그렇고 그런지라 시간아 빨리 가라 뿐이었다.
교생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중에 생떽쥐 배리의 어린 왕자라는 책을 읽어 본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고향 별에 두고 온 장미꽃 보다 더 예쁘고 많은 꽃을 여행을 통해 보게 되지만,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합니다. 저는 앞으로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여러분보다 더 착하고 똑똑한 학생들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생 실습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여러분은 제가 평생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3학년 7반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어린 왕자의 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런 영광된 자리를 있게 해준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순간 교실은 침묵이 흘렀다. 개중에는 남자 놈이 차마 울 수 없어 눈물을 참는 녀석들도 간간이 보였다. 그 뒤 나는 어린 왕자라는 책을 구입해 곱씹고 곱씹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의 하모니’의 꽃과 어린 왕자 노래가 생각난다.
“밤 하늘에 빛나는 수 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엔 꽃이 하나 살았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 왕자 있었다네… 꽃이여 내 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어린 왕자 그 한 마디 남기고 별을 떠나야 하였다네… 꽃은 너무 슬퍼서 울었다네.. 꽃은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 왕자는 눈물을 감추며 멀리 저 멀리 떠났다네… 한 해.. 두 해가 지난 뒤 어린 왕자 돌아왔다네… 하지만 그 꽃은 이미 늙어버렸다네…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요… 꽃은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만 시들어 버렸다네… 어린 왕자는 꽃씨를 묻었다네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 왕자의 눈물을 받은 꽃씨는 다시 살아났다네… 랄랄랄랄랄랄랄랄랄… 꽃은 다시 살아났다네… 랄~랄랄라랄… 하늘가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지금 교생은 어디에서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까?